
개인이 이웃집에 수십만원의 돈을 빌려줄 때조차 '이 사람이 혹시나
내 돈을 떼먹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몇 번이고 살펴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기업에 거액의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이야 말해 무엇하랴.
금융기관이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가장 우선적으로 보는 것은 역시 재무구조다.
재무구조가 튼튼한 기업이라야 적어도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빌려준
돈을 다 떼이는 불상사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 간판·집기 너무 많고 골프장 출입 잦으면 '의심'
부인이 경리 맡거나 다둥이 가족은 '믿을만'
하지만 재무구조만 살핀다면 소위 잘 나가는 초우량기업들만 돈을 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회의 역동성을 담보할 중소기업에도 돈줄을 대야 하는
금융기관들은 과연 어떻게 옥석을 가려 돈을 빌려줄까.
재무구조가 약한 중소기업에 많은 보증 지원을 하는 기술보증기금은 현장실사를 벌일 때
직원들의 응대태도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직원들의 인사성이 밝고 친절한 안내가 있으면
조직이 활성화돼 있고 직원들의 회사 만족도가 큰 것으로 판단해 발전 가능성을 높이 산다.
사업장 곳곳에 지나치게 새 간판이 많이 걸려 있거나 사무실 집기 등을 최근에 급히
새 것으로 바꾼 흔적이 보이면 위장사업장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해 본다. 이런 기업은
불시에 재방문해 현장실사를 다시 하기도 한다.
업체 대표와 면담을 할 때에는 종업원 수에서부터 평균급여, 재고액, 손익분기점 등
소소한 수치를 묻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대표의 관심과 '경영 숫자감각'을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허세를 부리거나 하는 점이 발견되면 실력을 의심받게 된다.
기술보증기금 변종호 홍보팀장은 "이 외에도 대표의 부인이 경리 쪽 일을 담당하고
있다거나 대표가 다둥이 가족일 경우 기업의 사고 발생률이 낮다는 식으로
오랜 경험에서 오는 계량화하지 못할 평가기준들도 알게 모르게 평가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고 말했다.
부산은행의 경우에는 투자자에 공개돼 있는 재무제표 등 공시자료 이외에 더 눈여겨 보는 항목들이 정해져 있다.
업체의 노사분규 발생 유무나 횟수가 가장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다.
노사 화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이다.
이 밖에 복리후생 부문의 변화나 공장 가동률, 불량률 등도 눈여겨 보는 항목이지만
가장 큰 부실징후는 회사 경리책임자의 잦은 교체라고 대출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부산은행 신용평가실 박부관 차장은 "제조업의 경우라면 현장실사에서 공장현장에
쌓여있는 재고물품이 얼마나 많은지에 평가 포인트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서는 불공정거래나 탈세, 윤리경영과 관련한 각종 강령과 조직, 교육 및
매뉴얼 작성 등에 대한 항목도 주요 평가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은행보다 예금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은행에 비해 공격적으로 대출을
실시하는 저축은행은 더 꼼꼼하고 심지어는 야멸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업체를 다그친다.
시중의 저축은행 가운데에는 업체의 대출담당자에게 대출을 조건으로 자기 담보를
걸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대출담당자가 담보를 걸지 않겠다고 버티는 기업이라면 더이상 볼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유 없이 대표의 차를 최고급 승용차로 바꾸거나 집기를 교체하는 기업도 의심의 대상이다.
돈을 빌리려는 업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 이유.
저축은행 관계자는 "업체 대표의 골프장 방문 횟수나 주변의 명성 등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있는 대로 다 참고하는 저축은행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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